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총독부 청사 (문단 편집) ===== 건물 이전 사안 ===== 철거를 반대하는 인사들과 건축가, [[고고학]] 전문가들 중에선 "새 박물관 건립 후 철거하자"는 주장과, "철거하지 말고 해체 후 이전[* 이는 건물을 조각조각 블록처럼 해체해서 다른 넓은 부지로 옮긴 후, 다시 본래 크기로 재조립해서 재현하자는 것을 말한다. 흔히 만화나 영화에서처럼 건물 겉껍데기를 헬기 등으로 옮기는 등 건물 째로 이동시켜 세우는 연출을 생각할 수 있으나, 그런 건 가능은 하겠지만 위험성도 있고 해체 후 조립보다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많이 든다.]하여 재조립(재현)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이 중에서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지지를 받은 의견으로는, 앞서 거론했던 '''"건물 전체를 해체한 후 [[독립기념관]] 부지 안으로 이전해서, 독립기념관 본건물인 겨레의 집 기준으로 서쪽 뜰에 다시 지어 재현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왜 하필 서쪽이냐 하면 해가 지는 방향이라 저문 일제의 세력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피라미드]]가 [[나일강]]의 서쪽에 있는 것과 같은 이유. ] 현재 조선총독부 부재 공원도 그런 의미로 독립기념관 서쪽 밀레니엄 공원 쪽에 위치한다. 이 의견은 '''[[독립기념관]] 뜰 안에''' 건물채 옮겨 세우고 이를 '''항일활동 전시관'''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식민 지배의 상징적 건물을 이전한 사례로는 [[홍콩]]에서 [[영국령 홍콩]] 시절 총독부에 해당하는 관청이었던 머레이 하우스(Murray House)[* [[영국]]이 [[홍콩]]을 식민지화하면서 총독부 개념으로 세운 건물인데, 이전된 지금은 집무실을 포함한 내부를 고급 레스토랑으로 만들어 놨다고 한다.]를 중심가 센트럴에서 외곽 지역의 스탠리로 벽돌 하나하나의 순서까지 그대로 옮겨버린 사례가 있었기에 나온 나온 사안이었다. 후술할 [[김종필]] 전 총리도 이와 맥을 같이 하는 의견을 냈다. 물론 이렇게 되면 민족 기념관 부지 안에 식민 시대를 되돌아보는 건물을 재현하는 의미는 있었겠으나, 어딘가에 식민 지배의 상징이자 흔적을 그대로 남겨놓는 것에 대한 문제 등이 논란이 되어 사장되었다. 돈이 철거 비용을 훨씬 상회할 500억대 정도로 들어간다고 보이긴 했지만 사실 그 정도를 국가적 사업에 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고, 단지 그만한 돈을 쓸 만한 가치가 있느냐가 문제였기에 비용이 이전의 핵심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이전 비용은 다음의 기사에서 확인 가능하다. [[http://mn.kbs.co.kr/news/view.do?ncd=3727124|기사]]. 당시에 새로운 국립중앙박물관의 신축 비용만 1천억 원으로 추산되었기 때문에 500억 원은 감당 못할 돈은 아니었다. 이 의견은 나가떨어졌으나 부분적으로는 반영되어, 현재는 건물의 일부 석재가 독립기념관 부지 안에 옮겨져 있다. 하여간 전면 철거보다는 잠시 해체하여 독립기념관 부지 안으로 이전 후 재현해서 일제강점기 역사관 등으로 활용하자는 주장 등 많은 논의가 있었으나, 짧은 시간동안 제대로 된 합의나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양측의 논쟁을 제대로 끝맺지도, 타협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1995년]] [[8월 15일]]에 정부는 철거식을 강행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